2023년 회고

(나의 이전 블로그에서 이전해온 글이다.)

벌써 1월 중순인데, 이제서야 2023년 회고를 적는다. 그동안 바쁘단 핑계로 블로그를 전혀 관리하지 않았는데, 내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들이 쌓여 이제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

Waveon 퇴사

우선, 첫 직장 Waveon을 퇴사했다. 표면적인 계기는 SW Maestro 합격이었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성장에 대한 갈망이었다.

첫 6개월은 매일 새로운 개념, 코드와 기술을 접하며 정말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특히 내가 개발한 기능을 통해 사용자에게 어떠한 가치를 제공하는 경험이 너무 재미있었다. 재미와 성장 두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으며 매일 출근하는게 기다려질정도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입사 9개월 차 쯔음 성장 속도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업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태스크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뭔가 하는게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는 곧 지루함과 무료함으로 이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표님과 함께 이야기하며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보았다. 백엔드 코드를 만져보기도 하고, 당시 핫했던 ChatGPT 관련 프로젝트를 도맡아 해보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개발하는 아이템 자체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졌던 것 같다. 당시 우리 팀은 피보팅을 고민하는 시점이었는데, 피보팅 자체는 스타트업 씬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피보팅의 구체적인 방향과 목표가 명확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새로운 기능을 구현해도 어차피 곧 엎어질 가능성이 높았기에 소극적으로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하루에 2~3시간 일하면 딱히 할 일이 없었고 퇴근하는 시간까지 (물론 자율출퇴근제였지만 그래도 코어 시간은 존재하니…) 다른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시간을 때우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나의 시간을 돈과 바꾸고 있다라는 느낌이 강해질 때 쯤 SW Maestro 합격을 하게되었다. 그리고 난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SW Maestro 14기

SW Maestro 과정에서 나는 크게 2가지를 얻고자 하였다. 1) 실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Problem Solver 적의 역량과 2) 기술적으로 성장을 얻고자 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자는 어느 정도 이루었고 후자는 내가 기대했던만큼 이루지 못했다.

Problem Solver 로의 성장

나는 개발을 좋아하지만, 궁극적으로 Problem Solver 가 되고 싶다. 개발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고, 결국 문제 자체를 다루는 사람이 되야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업은 개발자지만, 남는 시간에는 사람들의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며 용돈을 버는게 나의 목표다.

SW Maestro 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넉넉한 경제적 지원, 뛰어난 개발자 팀원들과, 기술 등 다방면으로 도움을 주시는 멘토님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팀에 합류해주신 디자이너님까지. 정말 흔치 않은 기회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전에 창업에 도전하면서 실수했던 부분들을 떠올리며, 다시하면 적어도 그때보다는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간단히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중고 애플제품의 시세를 알려주는 서비스이다. 애플제품을 중고로 구매할 때 얼마에 사면 잘 산건지 판단하기 어려운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품의 사양 및 상태별로 가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쉽게 말해 중고 전자제품의 ‘다나와’ 느낌이다.

꽤 오래전부터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였기에 프로젝트 초반에 팀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충분히 해결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다. 직접 중고 플랫폼들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액셀로 가격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게시글을 맥 관련 커뮤니티에 올렸고 사람들로부터 꽤나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다행히도 팀원들은 이러한 문제에 공감을 해주었고 함께 사용자 확보를 목표로 열심히 달렸다.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한지 10일만에 MVP 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공개하였고, 꽤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피드백을 받았다. 기획부터 개발까지 순수 나의 힘으로 프로덕트를 개발하고 누군가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뿌듯하고 즐거웠다.

약간 TMI이긴 하지만, 누군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우리 서비스를 추천해주는 정성이 담긴 후기글을 남겨주셨다. 살면서 처음으로 충성 고객 한 명을 확보했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고, 글을 작성해주신 분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부산까지 내려가 감사함과 여러 궁금한점을 물어봤다.

그렇게 우리 서비스는 처음에는 시세 서비스로 시작했지만, 조금씩 기능을 개선하고 추가하여 나름 꽤 많은 기능을 갖춘 서비스가 되었다. 한달에 3,000 명 정도의 active user를 확보하면서 그토록 소원이었던 사용자 확보도 어느 정도 이룬 셈이다. 물론 리텐션이 10% 대로 낮은 것은 우리가 계속 해결하려던 숙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는데, 특히 Amplitude 를 활용하여 데이터를 통해 객관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팀원들과 작고 큰 트러블들이 꽤 많았는데 이러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당시에 힘들긴 했지만 인간적으로 성장했던 것 같다.

아쉬운 기술적 성장

내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아무리 내가 Problem Solver 를 지향한다고 한들, 나의 본업은 개발자다. 사용자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개발도 개발이지만, 그 외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기획, 광고에 쓰일 마케팅 컨텐츠 만들고, 홍보글 작성하고, UI/UX 고민하고, 프론트엔드 개발까지… “그걸 왜 다 혼자해?” 라고 할 수 있지만… 각자의 능력을 인정하고,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팀장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러한 부분들을 내가 했을 때 우리 팀 내에서는 가장 잘하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할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신 나머지 팀원들은 백엔드와 AI 등 개발부분에서 최선을 다해주었다.) 농담으로 나랑 가장 친한 PH2팀의 창호님은 나를 ‘파워 블로거’ 라고 불러주셨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 8시에 센터에 출근하자마자 마케팅 컨텐츠 작성하고, UI/UX 고민하고 남은 시간에 개발을 했다. 2주간의 스프린트 단위로 새로운 기능 출시를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을 하다 보니, 성능이나 새로운 기술의 도입보다는 기능 구현에 초점을 맞추어 개발을 하였다.

이후 취준할 때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다보니 느낀 사실이지만, 한 건 꽤 많지만 막상 기술적으로 적을게 별로 없었다. 그 흔한 배포도 내가 안했으니, 사실 나는 기술적으로는 이전에 웨이브온에서 한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특히, 우리의 서비스는 AI와 백엔드가 핵심 기술이었고 그러다보니 기술 멘토링도 주로 백엔드와 AI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거기서 오가는 말을 1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 좋은 기회를 나는 흘려듣고만 있자니 너무 아쉽고, 그렇다고 새롭게 공부할 시간은 없고. 점차 프론트엔드에 국한되지 않고 조금 더 넓게 서비스르 바라보고 싶다는 니즈가 커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