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레브잇은 오퍼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입사 포기를 해서 최종합격 메일이 존재하지 않는다.

2024년의 12월 마지막 날 다음 행선지가 정해지지 않은 채로 퇴사를 하고 약 5개월 정도 지난 지금, 정말 가고 싶었던 두 개의 회사에 최종 합격을 하였고, 많은 고민 끝에 한 개의 회사에 최종 합류 의사를 전달드렸다. 그리고 입사까지 약 2주 정도 남은 시점에서 이직 후기를 작성해 본다. 2편으로 나누어서 작성할 계획인데, 1편은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2편은 각 전형 별 준비 방법이나 팁을 작성할 계획이다.

회사 선택 기준 세우기

취업이나 이직의 시작과 끝은 결국 “어떤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가” 에 대한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이다. 이 기준에 따라 목표가 결정되고, 목표에 따라 준비 전략이 달라지고, 최종적으로 여러 개의 회사 중 한 개를 선택할 때 후회없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나는 회사를 선택할 때 정확히 2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연봉, 복지, 워라벨 이런 부차적인 것들을 다 포기하더라도 이 두가지는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으로서, 내가 행복하게 일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기준 1.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인가?

나는 일을 재밌게 하는 걸 좋아한다. 이유는 굉장히 단순하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만큼 일하는 시간이 고통스럽다면 그만한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어차피 해야한다면 재밌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는게 당연하지 않는가. 그러면 어떻게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나의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나는 남의 일을 해주는게 아니라 내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웠다. 이 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주인의식이 생기고 발휘할 수 있는 곳이다. 사실 극단적으로 이 주인의식을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면 창업이겠지만, 창업은 정말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친동생이 스타트업 대표여서 옆에서 참 쉽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이 만든 회사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따지고 보면 남의 일을 하는 것이 맞지만, 그래도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인식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최면이 필요하다. 최면에 걸리기 위해서는 몇몇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이를 테면 조직 내에서 나의 역할과 영향력, 보상, 협업 환경 등이다.

a. 나의 역할과 영향력의 크기

자신의 역할이 전체 조직 내에서 핵심에 가까워 질수록, 조직 내에서 만들 수 있는 임팩트의 크기는 커지고, 그 임팩트의 크기가 클수록 더 큰 동기부여를 얻는다. 역할이란 크게 보면 개발자일 것이고, 그리고 작게는 Frontend, Backend 등의 세부 분야일 것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개발자가 전체 조직의 중심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개발자의 역할이 조직 내에서 중심이 아니라 서포트 성격에 가깝다면, 내가 발생시킬 수 있는 임팩트의 크기에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나아가서는 개발자 안에서도 나의 직무가 핵심인지 판단해야 한다.

내가 겪은 예시를 두가지를 들어보겠다. 이전에 AI 스타트업에서 Frontend 개발자로 일한 경험이 있다. 물론 같은 AI 스타트업도 서비스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얼핏 들었을 때 이 스타트업에서의 핵심 직무는 무엇일까? 물론 Frontend 직무가 사용자와의 접점으로 프로덕트의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AI Engineer 라고 생각한다. 물론, LLM 은 해외 빅테크가 만들고 있고, 대부분은 AI Wrapper 서비스이기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AI 기술을 잘 활용하여 원하는 결과물을 정확하게 도출하고, 시간 및 비용 효율적으로 LLM을 운영하는게 그 조직에서의 핵심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내 직무가 핵심일지 조금 헷갈리는 경우, 다음과 같이 질문을 바꾸어서 고민하곤 한다. “나는 이 조직에서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인가?”

반면 Figma 와 같은 노코드 툴을 만드는 스타트업에 재직할 때는 Frontend 개발이 정말 비즈니스에서 핵심 로직을 담당하고 있었고, 내가 하는 일들이 실제 비즈니스 임팩트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상당한 뿌듯함을 얻었던 경험이 있다. 따라서 정리하자면, 조직 내에서 개발자의 역할 그리고 개발자 안에서도 자신의 직무의 영향력을 고민해보면 이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b. 보상

보상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료하다. 성과를 만들어냈을 때, 성과를 구성원들에게 공유하면 자연스럽게 더 열심히 일하고 싶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스톡옵션이 있을 것 같다. 사실 스톡옵션은 높은 확률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즉, 이것 때문에 없던 주인의식이 새롭게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 회사와 나를 하나로 엮어주는 최소한의 연결고리라고 생각한다. 가끔 회사에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자신을 갈아 넣을 때, 그래도 “여기가 잘되면 나한테도 좋아”라는 최소한의 심리적 안전장치라고 생각한다.

c. 협업 환경

마지막으로는 협업 환경인데, 나의 의견이나 주장이 충분히 합리적이라면, 받아들여지는 환경인지이다. 잘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첫번째 이유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만들 수 있는 임팩트가 커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인의식이 증가한다.

기준 2. 기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인가?

개발자로서 기술은 포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프로덕트도 물론 좋지만, 더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적 역량이 어느 정도 뒷받침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술은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직 그리고 수평 방향으로의 성장이다.

이미지 출처: CodeSik의 개발공방

a. 수직적 성장

수직적 성장이란 쉽게 말해 자신의 분야에 대해 뾰족한 전문성을 갖추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를 테면, Frontend 의 경우 디자인 시스템, 컴포넌트 설계, 성능 최적화, 접근성 등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 수직적 성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수직적 성장은 참 어렵다. 우리가 보통 시험을 볼 때 80점 맞추기까지는 금방 걸리지만, 20점을 채우기 위해서는 훨씬 큰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하지 않는가. 비슷하게 어느 정도 레벨의 Frontend 개발자가 되기까지는 어렵지 않지만, 정말 잘하는 Frontend 개발자가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Frontend 를 잘한다” 라는 기준을 찾기 위해 1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고민하고 공부하고 있고, 이제 어느 정도 나름의 감은 생겼지만 아직까지도 찾고 있는 중이다. 다만 확실한건, 수직적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환경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속도보다는, 정말 우아한 코드를 작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 물론 매번 비즈니스의 요구사항으로 항상 우아한 코드를 작성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때가 되면 정말 진지하게 기술에 몰입할 수 있는 곳. 솔직히 Frontend 의 경우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국내에 몇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b. 수평적 성장

수평적 성장이란 자신의 분야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 대한 경험을 함으로써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역량을 갖춰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큰 그림을 그리는 역량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시험 공부를 할 때 항상 목차를 보면서 공부하듯, 전체적인 플로우를 이해하고 그 플로우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해해야지만이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나의 경우 2022년 개발에 처음 입문한 이후 지금까지 Frontend 역량만 쌓아왔고, 이 부분이 항상 아쉬웠다. 이전 회사에서도 어떻게든 수평적으로 성장해보겠다고 발버둥을 쳤고, 회사에서 다행히 배려를 해주었기에 어느 정도 달성은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만족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Fullstack Engineer 로 입사하지 않는 이상, 이런 수평적 성장을 기대하긴 어렵다. 회사는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다. 나를 Frontend Engineer 로 채용한 것은 내가 Frontend 분야에서 성과를 냈을 때 전체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만약 수평적 성장을 원한다면 “일단 Frontend 로 입사하고 언젠가는 Fullstack 으로 일할 수 있을거야” 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기보다, 애초에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곳이 유리하다고 믿는다.

종합하자면…

지금까지 위에서 언급한 기준1기준2 는 완전히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상호 연관되어 있다. 즉, 내가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서비스에 몰입하다 보면, 기술적 성장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기술적 성장이 이루어난다면, 이 서비스에 몰입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이 아름다운 사이클을 내 첫 직장에서 경험했고, 하루 빨리 주말이 끝나고 평일이 되기를 바랬던 그 때의 기분은 절대 잊을 수 없다.

목표 설정하기

자신만의 기준을 세웠다면, 목표를 세워야 한다. 나의 경우 위 두 가지 기준을 종합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을 고민해보니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시리즈 B 이상의 B2C 스타트업에 가자.” 목표를 하나하나 뜯어보자.

왜 B2C 스타트업인가?

먼저 왜 스타트업이냐 라고 했을 때, 기준 1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인가” 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 대기업보단 스타트업에 가깝다라고 판단했다. 그동안 스타트업 환경에서만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처음으로 대기업(네이버 랩스)에서 인턴을 했다. 인턴 포지션이라 그럴 수는 있지만, 조직 내부에서 내가 기여할 수 영역 즉, 영향력의 크기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특히 내가 만드는 제품이 조직 내 소수의 인원들이 사용하고 있고, 이마저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인턴 경험이 그렇다고 절대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 다만, 이 기준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는 이렇다.)

그럼 왜 하필 B2C 분야라고 물어본다면, 제품의 몰입도와 관련이 있다. 사실 직전 회사가 B2B 분야였고, 여기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적지 않다. 나는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무엇보다 내가 그 제품의 사용자 (일명 Dog Feeding) 일 때 내가 만들고 있는 서비스에 정말 몰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Dog Feeding 이 될 때, 고객과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의 깊이가 다르다. 이러한 이해도 없이는 항상 표면적인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작 진짜 문제를 놓칠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으로 Dog Feeding 이 어려운 B2B 는 B2C 에 비해 제품 자체에 몰입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비즈니스 도메인부터 생소하다. 나의 경우 CX 도메인의 제품을 만들었는데, CX 분야의 사람들이 평소에 어떻게 일하고,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물론, 아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객을 이해하려면 B2C 에 비해 몇 배의 노력을 요구하기에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생각한다.

왜 시리즈 B 이상의 스타트업인가?

이는 기준 2 “기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인가” 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수직적 성장” 과 관련이 있다. 이전부터 시드 단계의 스타트업에서 0to1 의 경험들을 쌓아왔다. 주로 시드 단계의 스타트업들은 당장의 생존을 위해 PMF 를 찾는게 우선이다. 따라서, 기술보다는 비즈니스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들을 봐왔다. 비즈니스 없이는 기술은 존재할 수 없기에, 이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앞서 잠깐 언급했듯, 나는 프로덕트를 좋아하지만, 엔지니어로서 기술을 좋아하고, 기술적 역량을 발전시키고 싶어하는 욕망이 크다. 특히 잘하는 Frontend 개발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수직적 역량을 키우고 싶은 니즈가 존재한다. 이 니즈를 채우기 위해서는 이미 PMF 는 찾은 상태이고, 규모적으로 스케일업하려는 스타트업들이 조금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이 단계에서는 기술의 역할이 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기존의 구조를 확장해 나가고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배울 부분이 정말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실성 이슈 - 느슨하게 기준 적용하기

이미지 출처: 잡학서고

목표는 목표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요새 시장 보면 정말 쉽지 않다. 나름 명확한 회사 선택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이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면 선택지가 매우 좁아진다.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회사 선택 기준은 매슬로우의 피라미드에서 자아실현 욕구에 가깝다고 한다면, 그보다 근본적인 안전 욕구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나의 경우 정말 다행히도 인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 욕구에 대해서는 덜 신경써도 되었다. (물론 6개월이라는 시간 제한은 있었지만) 다만, 이전 회사에서 퇴사할 시점에는 다음 행선지가 정해진 상태가 아니었고, 이에 따라 2주라는 공백기가 있었다. 어디에든 속해있지 않았던 공백기동안 정말 불안하고 고통스러웠고, 내가 이성적인 선택을 하지 못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기간이라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인턴 과정 중에 자아 실현의 욕구를 바탕으로 이직에 성공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잠깐 이야기가 딴길로 샜는데, 다시 돌아와보자. 인턴을 하고 있어도 이 기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예 이상적으로만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따라서, 기준을 조금 느슨하게 적용하여 회사를 지원하였다. 느슨하게란 위 두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회사는 아니더라도, 그 중 하나만이라도 충족한다면 일단 지원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위 두 조건 모두를 만족하지 않더라도 대체적으로 좋은 회사도 썼다. 대체적으로란 주로 남의 시선에 의존한 것이기에 이 방법은 결코 좋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코딩 테스트 한번 더 보고, 면접 한번 더 보게 해준다면 나는 손해볼 것은 없다고 생각해서 다 썼다. 다만 주의할 점은 합격해도 안 갈 회사는 쓰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만약 최종적으로 합격했을 때 사람의 안정 심리로 인해 포기가 생각보다 매우 어렵고, 이는 이성적인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